양달사 장군 정부표존영정 제작해 호국 정신 알린다

사회
양달사 장군 정부표존영정 제작해 호국 정신 알린다
자문, 사진 통해 정교함 살려
  • 입력 : 2024. 02.07(수) 13:01
  • 이승우 기자
조선 최초 의병장 양달사(梁達泗, 1518~1557) 장군의 정부표준영정 초본(抄本)이 나왔다.

정부표준영정은 한국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민족적 추앙을 받는 선현의 영정 난립을 방지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지정한 초상화를 말한다.

이번 초본으로 양달사 장군의 호국 정신을 전국에 알리고 기리려는 영암군의 노력이 첫 결실을 맺은 것이다.

공개된 양달사 영정 초본은 높이 180‧너비 155㎝ 규격의 서 있는 모습으로 조선 무신의 공식 복장인 철릭을 입고, 지휘봉인 등채를 들었다.

영정의 복식은 고영 한복문화연구원 대표의 자문과 양달사현창사업회 등 국내 학계의 학술 고증, 정조 때 삼도수군통제사 이창운(李昌運) 초상의 무관 군복 양식을 두루 참고해 제작됐다.

용모는 장군과 그 형제들의 후손 70여 명을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해 골격과 인상의 특질들이 반영됐다.

양달사 의병장은 1537년(중종 32) 무과, 1546년(명종 1) 중시에 합격해 전라 좌우 우후와 진해현감을 역임했다.

1553년(명종 8)에 남해 현감 부임 중 모친상으로 시묘살이에 들어갔는데, 을묘왜변이 발발하자 분연히 일어나 전라도를 구한 조선 최초의 의병장이다.

당시, 70여 척의 배를 타고 영암에 침입한 왜구에 의해 절도사 원적과 장흥부사 한온 등이 전사했고, 영암군수 이덕견은 항복하면서 10개 성이 잇달아 함락됐다.

양달사 장군은 영암군민과 여러 지역에서 피난 온 유민을 모아 의병대를 조직하고, 1555년 음력 5월 25일 오전 영암향교 앞에서 광대패인 ‘창우대’에게 굿판을 벌이게 한 다음, 왜구들이 방심한 틈을 타 급습해 대승을 거뒀다.

큰 승리에도 장군은 상을 당한 사람이 전쟁에 나간 것을 부끄러워해 공을 관군에 돌리고, 모친 묘로 돌아와 시묘살이를 하던 중 전투에서 입은 상처가 악화돼 순국했다.

영암군에서는 지난해부터 양달사 장군을 기리기 위해 영암성대첩 기념식을 거행해 오고 있다.

국가표준영정 제작을 주도해온 영암군은, 문체부의 지정에 맞춰 양달사현창사업회, 제주양씨주부공파 문중과 협의한 다음, 군민 참여 속에 영정 봉안식을 개최할 계획이다.
이승우 기자 wy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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